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롬 15:22-23)
바울을 움직였던 내적 동기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이 명령을 지켜내기 위해 전 인생을 투자한 사람입니다. 땅 끝까지 가기 위해 멈추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무작정 땅 끝만을 향해 갔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이르지 않는다면 땅 끝을 향한 그의 행보는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곳에 복음이 전해지면 그 다음 장소로, 복음이 전해지면 그 다음 장소로, 전해지면 그 다음 장소로. 이렇게 땅 끝으로 가는 것이 그 인생의 목적이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져 지금 이 곳에 일할 곳이 없어야 다음 장소로 간다는 계획은 어쩌면 그로 하여금 땅 끝으로 가지 못하게 만드는 목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수고해도 지금 여기에서의 복음이 다 전해졌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바울의 고백이 놀랍습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얼마나 수고했으면 이제 여기에서는 일할 곳이 없다 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얼마나 수고했으면.
바울의 고백을 보면서 드는 도전이 하나 있습니다. 나도 그런 고백 해낼 수 있는 인생이고 싶다는 도전입니다. 이 생을 마칠 때 이런 고백을 했으면 좋겠다는 도전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내가 할 일은 없다, 최선을 다했다, 후회 없다, 라 고백할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되지 않는 도전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던 그 주님의 말씀이(요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