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마 23:16-17)
보지 못하면서 본다고 착각하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납니다. 이 길이 맞다 주장합니다. 이것이 답이라 우깁니다. 자신은 잘하고 있다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길에 서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문제라고 합니다.
게다가 그 보지 못하는 자가 한 공동체의 리더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 집니다. 혼자만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데리고 그 길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혼자만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넘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눈이 열려야 지금 서있는 자리가 옳은 자리인지 알 수 있고,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길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늘 이 질문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가? 보지 못하면서 본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항상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보지 못하거나 보이지 않는다면 적어도 자신이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만 있어도 괜찮습니다. 인정할 수 있다면 사정이 이러하니 도와달라 요청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