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1

by 박순정 posted Dec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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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우리는 종종 예수님의 나심을 기뻐하며 축하합니다. 때론 케이크에 초를 올리고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하며. 이때마다 갈등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 나이가 어떻게 되지? 초는 몇 개를 해야 하지? 라는 것과 정말 예수님께 축하합니다, 라는 노래가 맞을까?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기뻐합니다. 생명이 중하고 인간됨을 입는다는 것이 그토록 귀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육신이 된 일은 생명을 얻어 고귀함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비천해지고 낮아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님의 성육신을 하나님 본체의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체를 입으신 것이라 말씀합니다. 게다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근본적인 이유는 죽기 위해서입니다. 죄인들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입니다. 비극적인 운명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나심을 맞이하는 우리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죽으러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아기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라고 쉽게 말할 수 있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근본적인 이유가 주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면 축하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주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생들을 위한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나심에 대한 축하는 주님을 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를 향한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이유가 바로 우리에게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해서는 감사합니다, 는 고백이 맞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육신을 입고 이 낮고 천한 땅에 죄로 인하여 고통하고 신음하는 인생들을 찾아오셨으니. 그 모든 은총과 혜택이 바로 우리들을 위한 일이니.